셋, 박원준 선생님의 가르침

일본 가라사와 소장
그러기를 몇 년, 커피를 잘 볶는다는게 너무나 어렵다는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선생님께 상담 겸 제가 이 나이에 커피를 꼭 볶아야만 할까 고민스럽게 말씀드려 봤더니 냉정한 말투로 오늘 당장가서 기계를 치우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아무 대답도 없는 저에게 조용한 말씀으로 약간은 위로하는 말씀으로 어느 항공사사장은 60세에 사업을 시작하여 대성하셨다며 그 나이에 무엇을 못하겠느냐 시며 용기를 주셨다.
그 이후로 나는 가끔 볶은 커피를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가서 테스트를 받았다.선생님께서는 초보자 냄새가 나는구나. 3초만 더 볶았으면, 3초만 덜 볶았으면, 좋았을걸, 늘 상 그러셨다.

엘빈 커피 창시 문달용(1994년)
어떨땐 잘볶았다 하시면서 한번 더 내리셔서 맛을 보셨다. 그럴때는 묘한 느낌이였다.
그때는 정말 3초만 더 볶아야 한다, 덜 볶아야 한다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로스팅에서 3초는 너무 긴 시간이다. 커피 로스팅은 그야말로 집중력과 오감으로 볶는다는 것을 말이 아닌 정신으로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야 깨우친 셈이다.
넷, 박원준 선생님의 작고와 엘빈의 위기

박원준 선생님과 문달용
박원준 선생님이 작고한 지금도 나는 커피를 볶기 시작할 때 선생님과 대화를 한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지만 내 마음 속에 늘 자리하고 계신 것은 그분의 커피 사랑은 아무도 따라 갈수 없는 그야말로 커피에 대한 집념과 철저함,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곳에 커피샵을 오픈하면 곧바로 방문하셨고 꼭 가보지 않아도 될 법한데도 배울 것이 없으면 버릴 것이라도 배워와야 한다며 찾아 다니셨다. 그분의 명언이 아닌가 싶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엘빈은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선생님 커피를 선보이던 장소로서 선생님의 커피가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난관이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엘빈 식구는 우왕좌왕했다. 유명하다는 원두를 사다가 블렌딩도 해보고 여기저기 좋은 원두가 있나 찾아다녔다. 좋은 원두가 있다해도 스타일이 전혀달라 손님 입맛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