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BEAN대한민국 최초의 로스팅어 박원준 선생님이 떠오르는

은은한 커피향에 아름드리 인생을 노래하다

"문명옥 대표, ‘명품 커피’ 장인정신 맥 잇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
"박원준 선생의 ‘초경근목 피엽화실’ 뜻 새기며 밤샘 로스팅 작업"
"바리스타 교육원에서 후학 양성과 창업 준비하는 일반인 대상 교육"

문명옥(59세) 대표“커피는 삶 그 자체”라고 말하며 지난 20여 년간 커피와 함께 살아온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 1970년대 전남 영암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일양약품에서 근무 하던 중에 1977년 요식업을 하는 남편 김양빈(62세) 씨와 결혼했다. 문 대표는 어려운 사회여건 속에서도 집중력과 친화력으로 주변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남동생 문달용(56세) 씨가 1995년 사당역에 엘빈 커피점을 운영하면서 커피 사랑의 꽃을 피웠다. 2008년 3월에 돌아가신 박원준 선생은 엄격한 커피교육을 남동생에게 전수하며 엘빈 커피점을 열도록 특별히 지원했다. 다도원 박원준 선생의 원두커피 사랑이 엘빈을 찾는 손님들에게 커피의 맛을 선보였던 장소다.

“차별화된 커피를만들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박원준 선생은 철저한 교육을 통해 항상 새롭게 커피 맛의 명품을 탄생시켰다. 남동생이 캐나다로 이주하자 문 대표가 엘빈을 이어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커피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박원준 선생 밑에서 엄격하고 완벽한 교육을 통해 커피 인생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가방 끈이 짧아 배운 것이 없었지만 한 번 결심하면 끝까지 한다는 고집과 열정으로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로스팅(roasting) 작업을 익혀갔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까지 은은한 향기와 깨끗한 산미를 내면서 화사한 향을 감미한 커피맛과 강렬하면서도 깊고 매끈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수많은 시간을 혼자서 싸워야 했다.

“배울게 없으면 버릴 것이라도 배워야 한다”는 박원준 선생의 철학을 이어가는 것이 문 대표의 숙제였다. 박원준 선생은 일본 커피협회에서 인정하는 5인의 커피장인 중 한 명이다. 그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커피와 독신으로 살아온 명인이다. 문 대표는 이러한 박 선생을 잊지 못해 일본을 방문하여 연구한다. “커피는 윤활유다. 내공을쌓으면 높이 가고 멀리 가느니라, 내공 없이 간판을 크게 걸면 쉽게 무너지느니라”라는 박 선생의 말을 잊지 않는다. 문 대표는 엘빈 커피 바리스타 교육원에서 후배 양성과 창업을 준비하는 일반인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이곳은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바리스타 아카데미 수강생들과 여주대학교 푸드코디네이션과 학생들의 실습장소로 이용된다.

커피를 배운 후 나만의카페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나눔을 갖겠다는 수강생 김영도(59세) 씨는 문 대표에 대해 “요즘 보기 드물게 자신의 일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분”이라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로스팅된 커피의 맛을 만들어내는 문 대표는 한국커피계를 이어갈 최고의 실력자”라고 말한다. 여주대 푸드코디네이션과 안빈 교수도 “특유의 열정과 카리스마,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바리스타 실무를 지도하여 학생들이 높은 수준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문 대표를 평가한다. 20여 년 간 박원준 선생, 문명옥 대표와 같이 동문한 최익권 대표(엘빈 대학로점)는 “박원준 선생의 커피 맛을 재현하고자 애를 많이 쓰는 문 대표를 보면 안타깝고 안쓰럽다”고 걱정한다.

문 대표는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커피와 함께하며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서 커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겠다”고 말한다. ‘초경근목 피엽화실(草莖根木皮葉花實)’ 즉, ‘한 알의 커피 씨앗에서 수많은 커피열매를 얻게 된다’는 생명의근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박원준 선생의 글을 상기하며,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커피와 대화하고 행동한다. 한국 원두커피계의 1세대 바리스타는 서정달, 박원준, 박상홍, 박이추 선생이다. 커피의 맛은 요술이다.